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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한국은행 총재의 변심, 약인가 독인가
 
김광석의 천자만설 기사입력  2016/05/11 [11:20]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태도를 바꿨다. 조선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종자돈을 발권력을 이용해 주채권은행들에 ‘출자’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태도를 바꿔 협력하겠다고 물러섰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심한 압박 끝에 나온 이같은 한국은행의 변심은 향후 우리 경제 구조개혁 과정에 좋은 약이 될 수도 나쁜 전철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언을 통해 구조조정 재원을 ‘대출’해 주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요구한 발권을 통한 직접 ‘출자’ 방식을 거부한 것이다. 한은의 이런 입장은 대출은 나중에 상환받게 되지만 출자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기업 회생이 안 될 경우 원금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 투입된 비용은 모든 국민의 부담이 된다.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있고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전에는 불가하다”는 한은의 주장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한은이 협력하겠다고 해서 한숨 돌리게 된 상황은 아니다. 정부와 한은의 협의체는 자본 확충 방안을 6월까지 확정해야 한다. 출자냐 대출이냐의 지원 형태와 지원 규모도 숙제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에 따른 위험성과 파장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건이다. 국가 채무가 급증한 가운데 과도한 발권력은 정부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려 외국 자본 이탈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의 발권력은 우리 경제의 비상 상황인 때만 동원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조조정에 있어 주체여야 할 정부가 빠지고 한은을 내세우는 것은 본말전도라는 비난은 이런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번 조선 3사와 해운 2개사에 대한 구조조정 자금으로 지원할 규모는 얼마나 될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해양조선의 빚을 메우느라 작년 말부터 퍼부은 돈만 4조 2천억 원이다. 산은은 지난해 순손실이 1조 8,900억 원이었고, 수출입은행은 순이익이 반토막 난 가운데 자기자본비율이 10%에 턱걸이했다. 이처럼 텅비어버린 이들 두 국책 은행 금고를 먼저 채워야 한다. 대우조선 등 조선 3사와 현대·한진 2개 해운사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만 해도 5조에서 10조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조선·해운업의 부실 구멍만 막으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국내 조선과 해운업이 안고 있는 전체 부채 규모는 무려 78조 원에 달한다. 게다가 국내 부실기업은 비단 조선·해운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업 이익으로 빚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2009년 말 1851개에서 2014년 말에는 2561개로 급증했다. 이들 한계 기업을 떠안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부실화도 심각하다. 작년 말 현재 국책은행의 부실 채권 규모는 11조 원이다. 재작년 말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그리고 국내 은행권의 전체 악성 부채(부실 채권) 규모는 15년 만에 최대치인 3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왜 한국 경제가 이 지경에 빠졌는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은행권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액이 168조 원이나 됐고,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20조 원의 자금 확충 펀드를 지원해주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정부와 은행, 기업들이 부실 폭탄 돌리기를 한 때문이다. 특히 2012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대량 실업 사태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던 정부가 구조개혁의 채찍을 들지 않았다. 이는 개혁 적기를 놓친 결정적 패착이 돼 이제 우리 경제 전반을 억누르는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논란이 뻔한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이라는 수단을 고집하는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통한 자금 확보는 국회 통과 등에 시일이 걸려 골든 타임을 놓칠 위험이 있지만 한은의 발권은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 맞는 말이지만 한국형 양적 완화에 집착하는 정부의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다. 첫째 국회의 추경 심의 과정에서 부실 암 덩어리가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때까지 지금껏 뭣 했느냐는 비난과 책임 추궁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 보수 정권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 부채 규모를 더 이상 늘리고 싶지않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채무가 291조 원이 늘었다. 정부 수립 이후 노무현 정부 때까지의 채무액이 299조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8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때문에 급한 구조 개혁은 하되 국가 부채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비난은 극력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면 국가 채무 증가로 잡히지 않는 점을 활용하고 싶어 꼼수를 부린 것이다. 

꼼수는 오래 가지 못 한다.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늘의 위기는 바로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이제 발등의 불이된 조선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 조달 과정에서 ‘한국형’이라는 재원 조달 방식이 글로벌 기준에서 벗어나 몇 개 기업 지원에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 더욱이 우리의 구조 개혁 대상이 조선·해운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철강과 석유 화학, 기계 등 개혁의 수술이 필요한 부분이 널려 있고, 필요한 비용도 수십 조 원에 달할 것이다. 그 때 필요한 재원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한국은행의 변심은 그것이 우리 경제 구조 개혁에 약이 돼야 한다. 다급하다고 규정과 절차를 어겨서는 안 된다. 기업 부채를 중앙은행에 떠넘겨서도 안 된다. ‘한국형’ 양적 완화가 국제적 관점에서 봐도 합리적이어야 하고 우리 경제 치유에도 약이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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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11 [11:20]  최종편집: ⓒ 이그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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